Q

【0021】김육 저 ?유원총보?(차따라:21)

【0021】김육 저 ꡐ유원총보ꡑ(차따라:21)

한국일보 97.09.30 22면 (문화) 기획․연재 3,712자   사


◎ 차이야기 그윽히 밴 ꡐ백과사전ꡑ

/차의 역사․효능부터 차세금 에피소드까지 1,730여자에 담아

/ꡐ동다송ꡑ보다 200년 앞선 17세기 주옥같은 문헌

내로라 하는 차인들도 잠곡 김육(1580~1658)이나 그의 저서 「유원총보」를 들먹이면 한풀 수그러진다. 초의(1786~1866)스님의 「동다송」보다 200여년이나 먼저 차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원총보는 조선 중엽에 나온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60책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 그중 37책이 밥과 떡 술 죽 등 음식물을 다루었는데 거기에 「차」편을 따로 두고 여러 가지 차에 얽힌 이야기를 적어 두었다. 차의 역사로부터 「다경」을 저술한 육우의 얘기, 차의 효능과 에피소드, 차세금에 얽힌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동다송이 모두 2,330자인데 비해 유원총보의 「차」편은 1,730여자. 차에 대한 동다송의 기술이 조리 정연한데 비해 유원

총보는 육우의 다경을 근간으로 여러가지 흥미로운 차이야기를 나열해 놓았다. 그러나 동다송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내용을 소상하게 전한 소중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함열파출소 뒤쪽 풀섶에 높이 2m50㎝ 가량의 불망비가 서있다. 대리석으로 다듬어진 비신과 비머리에 국화와 포도송이 구름무늬가 양각돼 있어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영의정 김공육 인덕불망비」라는 음각은 아직 뚜렷하나 뒷면의 글자들은 세월에 슬려 알아보기 어렵다. 이 비가 왜 이자리에 있는지는 현지인들도 잘 모른다.

익산시 문화계 이신효씨 등은 『반대파의 숱한 반발을 무릅쓰고 농민들을 위해 대동법을 시행하는 등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고 농사에 관한 많은 책을 저술하는 등 김육 선생의 치적에 대해 호남지방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송덕비일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경기 가평에도 그의 흔적은 남아 있다. 서울에서 경춘가도를 달리다가 청평역 조금 못미쳐 오른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청평안전유원지가 나온다. 유원지 주차장 맞은 편 600여평의 빈터에는 블로크 담이 둘러져 있고 「잠곡서원터」(향토유적 제7호)라는 간판이 덩그러니 서 있다. 빈터 한켠에 작은 제단이 있고 그 위에 「잠곡 선생 신위」라고 쓰인 작은 비석 하나. 유적지 입구 철문 왼쪽에는 높이 3m 가량의 「잠곡 선생 김육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7년만인 1705년에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 서원은 6․25때 불타고 터만 쓸쓸히 남았다.

유원총보 차편의 기술은 흥미롭다. 「<다보>에 촉주(현재 중국 사천성 성도)에서는 차를 작설 조취 맥과라 한다 하였다. 옛 문헌에 나오는 편갑(희소하다는 뜻)이란 이른 봄의 황차를 이르고 선익이란 찻잎을 매미날개처럼 연하고 얇게 한 것을 말한다」

중국의 자전 「한어」에는 황차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옛 풍습에 차례가 있었다. 약혼때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차를 선물하는 예를 이른 말이었다. 지금은 차대신 금품을 보낸다는 뜻에서 대차라고 하며 결혼준비금을 보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신부댁에 보내는 차를 황차라 하는데 황차란 다병 또는 벽돌차라고도 하며 찻잎을 벽돌 모양으로 단단하게 뭉친 것이다」

또 「감초벽」 대목에서는 「하루라도 차를 마시지 않으면 병이 날 정도로 차를 좋아하는 사람을 감초벽이라 했다」고 적고 감초벽에 걸린 대표적인 사람으로 육우를 들었다. 「소식차」를 두고는 「차 한사발을 끓인 솥에 쇠고기를 넣고 이튿날 아침에 보니 고기가 물로 변해 있었다」고 차의 뛰어난 소화 효능을 설명했다. 「일음백완」의 고사. 「당나라때 어떤 스님의 나이가 120살에 이르러 황제가 무슨 약을 복용하였기에 이렇게 될 수 있었는가 하고 물었다. 젊어서는 신분이 천하여 약이라고는 알지도 못했으나 본래 차를 좋아해 하루에 최소 40~50 사발을 마셨을 뿐이라는 게 대답이었다」

「각다거조」 대목에서는 「당나라때 익창현령 하이우는 차세를 징수하라는 관찰사의 조칙을 받고는 차세를 징수하지 않아도 살아가기 힘든 것이 익창사람들인데 하물며 세금까지 부과하다니 너무 악랄한 것 아니냐며 차를 불사르게 했다」고 기록했다. 「발다식상」에서는 「숭양의 백성들에게 차를 많이 심어 업으로 삼도록 하자 장영이 차는 이득이 많아 관에서 장차 세금을 부과할 것이므로 백성들이 앞으로 과중한 차세에 시달릴 것이라고 여겨 차나무를 뽑아 내고 대신 뽕나무를 심도록 명했다」고 적었다. 차세에 대한 저항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용염강」 편에서는 「차가 중품의 것이라면 생강을 사용하는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금을 쓰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다. 이밖에도 다른 옛 차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대목이 많다.

차관계 문헌만을 찾아 후학들의 참고자료가 되도록 번역해 출판할 준비를 하고 있는 이재휘(63․서울 송파구)씨는 『흔히들 초의 스님의 동다송 이전에는 차에 관한 저술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큰 착오』라며 『지금도 유원총보 임원십육지 등 주옥같은 문헌이 잇달아 발굴되고 있다』고 말했다.<김대성 편집위원>


◎ 김육은 누구인가

김육의 호는 잠곡, 효종때 영의정을 지냈다. 경제정책에 탁월한 식견이 있었고 백성 수탈의 방법이었던 공물법을 폐지, 미포로 대납하는 대동법을 실시했다.

수레를 제작해 말이나 사람이 물건을 운반하던 불편을 덜고 관개에 수차의 사용을 주청했다. 병자호란으로 소실된 활자를 새로 만들어 많은 서적을 간행하게 하는 등 실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잠곡필담 해동명신록 등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 알기쉬운 차입문

/재료․가공법 비슷해도 차문화 천차만별

/찻집․교육원 등 통해 이론아닌 체험으로 차배우기가 정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차는 녹차가 대부분이다. 「작설차」 「춘설차」 「설록차」 등 시중의 많은 차이름은 제품을 시장에 내 놓는 제다회사에서 붙인 것일 뿐 재료나 가공 방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차이름은 만드는 장소, 방법,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차라도 적게는 두세 가지, 많게는 10여 가지의 다른 이름이 붙어 있어 차를 처음 마시는 사람들은 낮선 차이름에 혼란을 겪게 마련이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차는 중국차보다는 구분하기가 쉽다. 대개 포장 용기에 차를 만든 방법과 찻잎을 딴 시기를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중국차는 아주 드물게 「특선명차」란 통칭이나 「오룡차」니 「철관음」이니 하는 이름만 적혀 있을 뿐이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생산지와 연결된 중간 소개인과 소비자가 직접 챙겨서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찻집에서 차를 사는 풍경도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포장된 차를 사는 것이 보통이지만 중국인들은 큰 통속에 든 차를 골라 무게를 달아서 팔고 산다. 수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차는 몇몇 큰 회사의 제품 가운데 비교적 값이 싼 대중적인 차가 주종이다. 수백년 전통의 맛을 자랑하는 고급차는 현지 판매나 우편․신용 판매가 대부분이다.

대신 중국에는 직접 차맛을 볼 수 있는 현장이 곳곳에 있다. 또 일본에는 수백년간 그들 나름대로 일구어 놓은 전통이 지금도 일상의 차생활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아직 우리는 그런 현장이나 전통이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우리가 특별히 공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내 전통찻집이나 차전문점을 직접 찾아 가든가 차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일이다.

아직 전통찻집, 차전문점, 차교육원, 차문화원 등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에게 그리 낯익은 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우리의 맛과 멋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이 있어 차생활의 좋은 길라잡이가 된다.

차생활은 이론이 아니라 직접 겪고 느끼는 것이다.<박희준 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

^_^ 돌아가기